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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오순절 운동…한국교회 성장을 이끌다

김효미 기자 (hmkim0131@goodtv.co.kr)

등록일 2022-09-29 

[앵커]

내달 대한민국 서울에서 오순절교단의 최대 축제 ‘세계오순절대회’가 열립니다. 오순절 운동은 전 세계 교회에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도 '오순절 신앙'이 끼친 영향은 상당한데요. 우리나라 오순절 운동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김효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한국 기독교 대부흥의 역사를 쓴 오순절 운동. 이 오순절 운동은 20세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06년 미국의 로스엔젤레스 아주사 거리의 허름한 건물에서 시작됐습니다. 아주사에서 시작된 오순절 성령운동은 100년 만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약 6억 명의 성도를 지닌 기독교 부흥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아주사 부흥회에서 메리럼시 선교사는 예배 중에 성령 충만을 받고 1928년 한국에 들어오면서 오순절 신학도 시작됐습니다. 그 당시 한국은 일제강점기에 있어 교회가 큰 수난을 겪고 있었지만 메리럼시 선교사의 간절한 기도와 전도로 1932년 한국 최초 오순절교회인 서빙고교회가 설립될 수 있었습니다.

1950년, 제1회 대한기독교오순절 대회가 개최되면서 본격적인 오순절 신학이 시작됐습니다. 6.25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미국 하나님의성회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이 대거 한국에 들어오게 됐고1953년 박성산 목사 주도 하에 서울 남부교회에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가 창립됐습니다. 또 교단 신학교인 순복음신학교가 개교해 우리나라 오순절 운동을 이끈 신학자들을 배출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 조용기 목사와 최자실 목사도 이곳 졸업생입니다.

[ 조용기 목사 / 여의도순복음교회 : 저는 1958년도에 신학을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도 올 데, 갈 데 없어서 천막하나 치고 대재마을 불광동(現 대조동)에 남의 허락도 안받고 천막을 쳤습니다. 24인용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고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는데… ]

오순절 운동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60~80년에는 조용기, 박정근 목사 주도로 오순절 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고, 각 교회마다 대중 전도 집회가 활성화됐습니다. 1970년대에는 대중 전도집회가 많이 열렸습니다. 1973년 여의도 전도집회에서는 한국교회 성도 300만명이 운집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3천만명일때의 일입니다. 전체인구 1/10이 집회에 참석했던 겁니다. 한경직 목사를 당회장으로, 빌리 그레함 목사가 주 강사로 나서 17개교단이 연합한 초교파 대형 전도대회였습니다. 이 집회를 통해 16,703명이 결신하기도 했습니다. 1974년 엑스플로 대회, 1977년 민족복음화대회, 1980년 세계복음화대회를 통해 오순절운동은 대중화됐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오순절 교인은 전 세계 기독교인의 25퍼센트가 넘는 비율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담임목사는 "우리 한국교회는 기본으로 돌아가 성령 충만함으로 이 역사에 동참해야 한다"며 성령의 역사가 오순절대회를 통해 재현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GOODTV NEWS 김효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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