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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40주기, 故문용동 전도사 희생 되새겨

진은희 기자 (jin@goodtv.co.kr)

등록일 2020-05-27 

26일은 5.18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문용동 전도사'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는 5.18민주화운동 40주기를 맞아 문 전도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예배를 드렸는데요. 최근 문 전도사가 순교자에 부합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문 전도사를 순교자로 추서해야 한다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진은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한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0년이 됐습니다. 당시 목숨을 바쳐 광주시민과 계엄군의 생명을 모두 지키고자 애썼던 그리스도인도 있었는데요. 광주 상무대교회 문용동 전도삽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 있는 무기고를 지키다 순직한 문용동 전도사의 희생을 기리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김태영 총회장/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40년 전, 5월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당하고 눈물을 흘려야만 했는지 5월 정신을 성찰하며 삽시다."

(신정호 부총회장/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우리가) 추모하는 것은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이 땅에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분들이 못다한 일들을 우리의 과제로 삼기 위함입니다."

1980년 5월 18일, 문 전도사는 상무대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던 길에 군인들에게 폭행을 당해 쓰러진 시민을 보고 항쟁에 참여합니다. 평소 입버릇처럼 "세상이 어렵고 민중이 고통받을 때일수록 그리스도인이 앞장서야 한다"던 그의 말을 실천에 옮긴 겁니다. 문 전도사는 부상자를 돕고, 헌혈을 독려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계엄군이 물러난 뒤엔 도청 지하에 있는 무기고 관리도 자원했습니다. 하지만 이도 잠시, 문 전도사는 27일 새벽 도청에 진입한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 피살됩니다.
문 전도사의 친구인 윤상현 목사는 신학도로서 맡은 소임을 다하려 했던 그날의 기억이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고 증언합니다.

(윤상현 목사/ 故 문용동 전도사 동기)
"(26일) 도청 앞에 찾아갔어요. 가서 들리는 이야기로 오늘저녁이 위험하다 나와라 그랬더니 무기고안에 있던 TNT라던가 다이너마이트 분리했던 이야기를 상세하게 해주면서 이것을 알고 어떻게 신학도로 신앙인으로 나갈 수 있겠느냐 내가 끝까지 이걸 지키겠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그런 마음으로 여기 남겠다. 그래서 "나가자 나가자" 말하다 결국에는 악수만 하고 헤어졌죠. 다음날 27일 아침에 광주 도청 상무관에 가서 보니깐 이미 (관 위에는) 태극기가 덮여있었죠."

최근에는 문 전도사의 숭고한 희생을 순교로 봐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와 예장통합  측은 가을 정기총회 때 순교자로 추서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자료연구를 통해 문 전도사의 죽음이 순교자 추서에 부합하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문용동전도사기념사업회는 "5.18민주화운동 외에 4.19 혁명과 같은 민주주의 운동에 참여해 순직한 그리스도인들도 순교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GOODTV NEWS 진은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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