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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참배 ] 에 대한 검색결과 입니다.

검색결과 6

민족 독립 위해 ‘밀알’된 신석구 목사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자주독립을 이룬데에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들도 독립운동에 적극 앞장섰는데요.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면서 굳건한 신앙으로 민족구원을 위해 헌신했던 신석구 목사의 생애를 살펴봅니다. 김민주 기잡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나라와 민족을 살릴 수 있다고 믿었던 신석구 목사. 신 목사는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서울과 춘천, 원산, 남포 등지에서 전도와 목회활동에 힘썼습니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신석구 목사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방황하다 고향친구의 전도로 33살에 기독교인이 됐습니다.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감리교 목회자가 된 신 목사는 서울 수표교교회를 담임하고 있던1919년, 민족대표 독립선언 서명에 마지막 주자로 참여했습니다.  신 목사는 일본어를 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193~40년대 일제의 신사참배와 태평양전쟁 전승기원예배 요구에도 타협하지 않아 수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김진홍 목사 / 수표교교회 ) "일본 검사가 물을 때마다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내가 감옥에서 나간 뒤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독립운동 하겠습니다" 이런 얘기를 일본 순사 또는 일본 재판정에서 흔들림 없이 얘기했던 분이죠." 신석구 목사는 독립활동으로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받는 와중에도 민족구원의 사명을 놓지 않았습니다. 외진 시골마을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는데 힘썼습니다. 광복 후 북한에서 교회재건과 반공운동을 펼치던 신석구 목사는 신변이 위험하니 월남하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양들을 버리고 갈 수 없다"며 사역을 지속했습니다. 그러다1949년,  반동비밀결사에 가담했단 혐의로 10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 1950년 6.25전쟁 때 공산군의 총살로 순교했습니다. 한국정부는 신 목사의 애국정신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습니다.          (김승태 소장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신석구 목사님의 공생애는 한 마디로 한다면 우리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희생의 삶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행이 일치하는 신앙뿐만 아니라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있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밀알이 떨어져 죽으면 열매가 많이 맺힐 터이니 내가 독립을 위해 죽으면 내 동포 마음 속에 민족정신을 심을 것이다." 굴하지 않는 신앙으로 독립과 민족 구원을 위해 살았던 신석구 목사의 삶과 정신은 많은 이들에게 밀알이 되고 있습니다.          GOODTV NEWS 김민주입니다.

2020-08-14

[광복 75주년] 일상 속 뿌리 박힌 일제 잔재

보통 교회에서 예배할 때 묵도로 시작을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 묵도라는 단어가 일제시대 신사참배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올해로 광복 75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우리사회 곳곳에는 일제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구체적인 실태를 짚어봤습니다.  이정은 기자의 보돕니다.  “다같이 묵도하시겠습니다” 흔히 예배 시작 전에 자주 사용하는 말인데, 이 표현은 원래 ‘침묵 기도’란 의미로 한국교회가 먼저 사용했습니다. 하지만1930 년대 후반 일제가 한국 교회에 전쟁 협력을 강요하기 위해 예배 순서 앞에 이른바 ‘애국 의식’을 집어넣으면서 ‘일본 신사에 먼저 참배한다’는 의미로 변질됐습니다.  (김승태 목사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위원) "묵도라는 것이 국가를 위한 어떤 기원하는 그런 게 돼버렸거든요. 그 의미가 왜곡된 거죠. 지금은 교회에서 예배로의 부름, 예배의 삶 이런 거로 대체돼서…" 그밖에 성가대는 찬양대로, 교단은 교파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식민통치를 기념해 한반도에 처음 심었다는 가이즈카 향나무가 있는 학교들도 여러 곳 확인됐습니다. 또 흔히 쓰는 ‘차렷’과 ‘경례’ 등의 인사 방식은 일왕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의미로 대표적인 일제 잔재 중 하납니다. 교육관계자들은 ‘바른 자세 인사’나 ‘안녕하세요’로 순화해 쓸 것을 권고합니다.  오늘날 장례 문화에도 일제 잔재는 남아있습니다. 유족들이 팔에 차는 완장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식민지 정책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사용하는 국화는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송길원 목사 / 청란교회) "교회 장례식이나 세속의 장례식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픈 일인데… 너무 많은 일본의 문화들이 우리 속에 스며들어 있는데 정말 고쳐야 될 것은 용어보다는 그런 뿌리 깊이 박혀있는 상 장례문화의 이것이라도 극복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광복 75주년이 지났지만 우리 생활 곳곳에 해묵은 일제 잔재는 여전합니다. 용어를 순화하는 것부터 시작해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할 땝니다.  GOODTV NEWS 이정은입니다.

2020-08-12

숭실대, 나도래 선교사 등 불휘총서 5권 발간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이 불휘총서 5권을 새로 발간했습니다. 숭실대는 지난 2016년부터 숭실대의 뿌리를 이룬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평양 숭실 출신 기독인들의 이야기를 간행해왔는데요, 이번 책들은 나도래 선교사 등 한국 선교에 힘쓴 기독인 5명의 평전을 담았습니다. 자세한 내용 이정은 기자가 소개합니다. 나도래, 모의리, 옥호열, 손정도, 조만식. 숭실대의 근간을 이루고 한국 기독교 전파에 힘쓴 기독인들입니다. 숭실대는 최근 이들의 삶을 담아낸 불휘총서 5권을 발간했습니다. 불휘총서는 숭실의 역사가 시작된 평양 숭실의 교장과 선교사 평전과 관련 교육 자료들을 엮은 책으로, 뿌리를 뜻하는 옛말 '불휘'를 붙였습니다. 새로 발간한 책들 중에는 평양 숭실대 교장을 지낸 나도래 선교사와 모의리 선교사의 삶이 담겼습니다. 이로써 숭실대가 1897년 평양에 설립된 후 일제의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당할 때까지 학교를 이끌었던 설립자 베어드 선교사를 시작으로 평양 숭실 5대 교장의 평전이 완성됐습니다.  (인터뷰: 오지석 교수 /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 5대 교장에 대한 시리즈가 일단 마무리됐다. 또 서울시대를 열었던 옥호열 선교사에 대한 것들이 있었다. 평양 숭실 출신의 우리나라에 있어서 지도자들, 손정도 목사님이라든지 조만식 선생님에 대한 평전을 했다.  숭실대는 관련 연구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으론 숭실 출신 인물에 국한하지 않고 기독문화전반에 영향을 끼친 기독인들로 선정 범위를 더 확대해 갈 계획입니다.  (장경남 교무처장 /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장) (숭실대 관련) 이 인물에 그치는 게 아니라 기독교문화전반에 걸친 영역으로 확대를 하려고 합니다. 자료들을 발굴해내고 연구하고 그것들을 일반화 시켜서 대중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어떤 것인가를 모색하고 잇는 중이고요.  숭실대는 내년 1월 소안론, 안애리 선교사 등 6명의 평전을 추가 발간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GOODTV NEWS 이정은입니다.  

2020-08-10

[특별기획-한국전쟁70년] 국난극복 기도운동 ‘초량교회’

영남권을 대표하는 어머니교회로 불리는 부산 초량교회. 예장합동 교단이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로 지정할 정도로 역사적 의미가 남다른 곳이기도 합니다. 6·25 당시 피난민들을 섬기고 나라를 위한 구국기도에도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기독교 유적지를 찾아가는 GOODTV 특별기획, 이번 시간엔 부산 초량교회에 다녀왔습니다. 진은희 기잡니다. 부산역을 마주한 초량동 이바구길 언덕배기. 이곳에는 영남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적지 초량교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초량교회는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순 없지만 1892년 미북 장로회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가 한강 이남에 세운 최초의 교횝니다.  초량교회는 일제 치하 항일구국활동에 누구보다 앞장서며 숱한 역경과 고난을 딛고 잘 견뎌왔습니다. 6·25 전쟁 발발 후 40 여 일만에 대구, 부산 등 몇몇 지역을 제외한 남한의 전 지역이 공산군에 점령을 당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교회는 피난민들의 안식처가 됐습니다. 교회 내 유치원은 휴원을 하고, 뜰과 마당은 온통 천막으로 덮였습니다. 그리고 전 교인이 힘을 합해 피난민 구호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한국교회는 초량교회 등 부산 곳곳에 모여 국난극복을 위한 간절한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정금준 장로(95) / 초량교회 구국기도회 참가자)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항상 낮에도 밤에도 하고 기도를 했다고…초량교회에 전국에서 모였거든요. 그래서 당시 대통령도 오고, 부통령도 오고, 장관도 오고 다 왔어요. 한국에 있는 정치인들도 다 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잖아요." (정충권 위원장 / 초량교회역사위원회)  "목회자들이 그동안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 특히 일제강점기 시대 때, 우리가 일제 강압에 못 이겨서 신사참배 했던 것. 우상에게 절했다는 죄책감. 내어놓기 힘들지만 그 당시 기도자, 설교자들이 고백하면서 회개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초량교회는 역사 유산을 후대에도 널리 알리고자 교회 내 역사관도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초량교회 역사관인데요. 1950년 9월 통회구국기도회 당시 고 한상동 목사를 비롯한 여러 목회자들이 이 강대상에서 설교를 하고 기도회를 이끌었습니다.  초량교회 김대훈 담임목사는 "초량교회 예배당에는 항상 태극기 현수막이 걸려 있다"며 " 믿음의 조상들 뒤를 이어 나라를 사랑하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김대훈 담임목사 / 초량교회) "(당시) 절박함이 우리 초량교회 마당에서 구국기도회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바다를 끼고 하는 간절함이 초량교회 성도들에게 자연스럽게 배움이 되었고, 가르침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GOODTV NEWS 진은흽니다.

2020-06-23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순교 70주기

올해는 6.25전쟁과 함께 손양원 목사 순교 70년이 되는 햅니다. 남북 간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에서 화해와 평화를 위한 기도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인 것 같은데요. 한국교회총연합이 6.25전쟁과 손양원 목사 순교 70주년 기념예배를 갖고, 손 목사의 순교정신을 기리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하나은 기자의 보돕니다. 6.25 한국전쟁과 손양원 목사 순교 70주년 기념예배가 18일 영락교회에서 열렸습니다. 기념 예배는 코로나 19 여파로 한국교회총연합 교단장과 임원 등 100여명 만  모인 가운데 진행됐습니다.         손양원 목사는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아들 삼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사랑의 사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손 목사는 여수 애양원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해 소외 받은 한센병 환자들에게 25년간 복음을 전했고,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하지 않아 6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북한군에게 체포돼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날 참석자들은 손양원 목사의 순교 정신을 기리며 손 목사의 용서와 사랑을 되새겼습니다. (강경민 목사 / 평통연대 상임대표) "손양원 목사의 순교 70주년을 기념하는 오늘 자랑만 할 수 없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 위대한 사상과 삶을 역사 속에 체휼하지 못했던 못난 역사를 부끄러운 마음으로 통회하면서 이 땅의 통일의 길이 활짝 열리기 까지 사랑으로 인고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강변교회 김명혁 원로목사는 특별강연에서 사랑의 본보기를 손수 보여준 손양원 목사를 기억하고 한국 교회가 섬김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명혁 원로목사 / 강변교회) "(한국교회가 배워야 할 것은)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순수한 신앙의 절개를 지키면서 처절한 회개와 순수한 원수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다가 죽으신 순교적인 삶과 순교적인 죽음 그것을 좀 지금 바라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편, 한교총은 이날 '평화로 가는 대로를 닦자'는 주제로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다가올 죽음을 피하지 않고 순교의 면류관을 받아 든 손양원 목사의 사랑이 한국교회가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며 "사랑의 실천을 통해 평화의 길을 열어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GOODTV NEWS 하나은 입니다.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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