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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 에 대한 검색결과 입니다.

검색결과 9

근현대사 속 기독여성운동史 한눈에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인권은 무시되기 십상이었는데요. 여성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사회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여성사회운동의 발자취와 기독 여성의 활약상을 온라인으로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김민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크리스천이던 최용신 선생은 수원 샘골에서 한글과 성경을 가르치며 농촌계몽과 문맹퇴치에 힘썼습니다. 가부장적 제도 아래 성차별이 심했던 1960년 기독 여성들은 직접 거리로 나와 첩을 두는 당시 문화를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한국 근현대사에 나타난 여성들의 활약상과 여성운동의 역사를 온라인에서 한 데 만나볼 수 있게 됐습니다. 기독 여성시민단체인 한국YWCA가 창립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청년, 여성, 기독 운동의 유산을 공유하기 위해 온라인 저장소 '아카이브'를 구축한 겁니다. 아카이브는 1898년9월 1일 북촌에 살던 여성 2명이 여권운동을 시작한 날에 맞춰 일반에 처음 공개됐습니다. (원영희 회장 / 한국YWCA연합회) "기독 여성시민단체인 YWCA의 공동의 기억을 남기는 의미가 있고, 100년동안 여성을 위한, 인권신장을 위해서 했던 수많은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보는데 특별히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카이브엔 지난 98년간 한국YWCA가 주도했던 여성인권운동의 역사가 담겨있습니다. 현재는 1922년부터 시작된 YWCA의 초기 활동을 중심으로 1단계 자료구축이 이뤄진 상탭니다.  아카이브의 ‘기록’ 페이지에선 YWCA 설립이야기와 여성인권, 직업훈련 등 8300여 건의 기록물과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정보가 있다면 키워드 검색을 활용하면 됩니다. 아카이브 '콘텐츠' 메뉴는 연도별로 역사를 요약해 놓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회원YWCA 메뉴에선 전국 53개 지역 YWCA의 정보와 활동기록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YWCA는 2022년까지 아카이브 자료구축을 단계별로 확장하는 한편, 경기도 시흥 YWCA버들캠프장에 오프라인 자료실을 만들어 시민들이 언제든 관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GOODTV NEWS 김민주입니다.

2020-09-21

[광복 75주년] 일상 속 뿌리 박힌 일제 잔재

보통 교회에서 예배할 때 묵도로 시작을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 묵도라는 단어가 일제시대 신사참배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올해로 광복 75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우리사회 곳곳에는 일제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구체적인 실태를 짚어봤습니다.  이정은 기자의 보돕니다.  “다같이 묵도하시겠습니다” 흔히 예배 시작 전에 자주 사용하는 말인데, 이 표현은 원래 ‘침묵 기도’란 의미로 한국교회가 먼저 사용했습니다. 하지만1930 년대 후반 일제가 한국 교회에 전쟁 협력을 강요하기 위해 예배 순서 앞에 이른바 ‘애국 의식’을 집어넣으면서 ‘일본 신사에 먼저 참배한다’는 의미로 변질됐습니다.  (김승태 목사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위원) "묵도라는 것이 국가를 위한 어떤 기원하는 그런 게 돼버렸거든요. 그 의미가 왜곡된 거죠. 지금은 교회에서 예배로의 부름, 예배의 삶 이런 거로 대체돼서…" 그밖에 성가대는 찬양대로, 교단은 교파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식민통치를 기념해 한반도에 처음 심었다는 가이즈카 향나무가 있는 학교들도 여러 곳 확인됐습니다. 또 흔히 쓰는 ‘차렷’과 ‘경례’ 등의 인사 방식은 일왕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의미로 대표적인 일제 잔재 중 하납니다. 교육관계자들은 ‘바른 자세 인사’나 ‘안녕하세요’로 순화해 쓸 것을 권고합니다.  오늘날 장례 문화에도 일제 잔재는 남아있습니다. 유족들이 팔에 차는 완장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식민지 정책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사용하는 국화는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송길원 목사 / 청란교회) "교회 장례식이나 세속의 장례식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픈 일인데… 너무 많은 일본의 문화들이 우리 속에 스며들어 있는데 정말 고쳐야 될 것은 용어보다는 그런 뿌리 깊이 박혀있는 상 장례문화의 이것이라도 극복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광복 75주년이 지났지만 우리 생활 곳곳에 해묵은 일제 잔재는 여전합니다. 용어를 순화하는 것부터 시작해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할 땝니다.  GOODTV NEWS 이정은입니다.

2020-08-12

[특별기획-한국전쟁70년] 국난극복 기도운동 ‘초량교회’

영남권을 대표하는 어머니교회로 불리는 부산 초량교회. 예장합동 교단이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로 지정할 정도로 역사적 의미가 남다른 곳이기도 합니다. 6·25 당시 피난민들을 섬기고 나라를 위한 구국기도에도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기독교 유적지를 찾아가는 GOODTV 특별기획, 이번 시간엔 부산 초량교회에 다녀왔습니다. 진은희 기잡니다. 부산역을 마주한 초량동 이바구길 언덕배기. 이곳에는 영남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적지 초량교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초량교회는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순 없지만 1892년 미북 장로회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가 한강 이남에 세운 최초의 교횝니다.  초량교회는 일제 치하 항일구국활동에 누구보다 앞장서며 숱한 역경과 고난을 딛고 잘 견뎌왔습니다. 6·25 전쟁 발발 후 40 여 일만에 대구, 부산 등 몇몇 지역을 제외한 남한의 전 지역이 공산군에 점령을 당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교회는 피난민들의 안식처가 됐습니다. 교회 내 유치원은 휴원을 하고, 뜰과 마당은 온통 천막으로 덮였습니다. 그리고 전 교인이 힘을 합해 피난민 구호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한국교회는 초량교회 등 부산 곳곳에 모여 국난극복을 위한 간절한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정금준 장로(95) / 초량교회 구국기도회 참가자)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항상 낮에도 밤에도 하고 기도를 했다고…초량교회에 전국에서 모였거든요. 그래서 당시 대통령도 오고, 부통령도 오고, 장관도 오고 다 왔어요. 한국에 있는 정치인들도 다 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잖아요." (정충권 위원장 / 초량교회역사위원회)  "목회자들이 그동안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 특히 일제강점기 시대 때, 우리가 일제 강압에 못 이겨서 신사참배 했던 것. 우상에게 절했다는 죄책감. 내어놓기 힘들지만 그 당시 기도자, 설교자들이 고백하면서 회개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초량교회는 역사 유산을 후대에도 널리 알리고자 교회 내 역사관도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초량교회 역사관인데요. 1950년 9월 통회구국기도회 당시 고 한상동 목사를 비롯한 여러 목회자들이 이 강대상에서 설교를 하고 기도회를 이끌었습니다.  초량교회 김대훈 담임목사는 "초량교회 예배당에는 항상 태극기 현수막이 걸려 있다"며 " 믿음의 조상들 뒤를 이어 나라를 사랑하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김대훈 담임목사 / 초량교회) "(당시) 절박함이 우리 초량교회 마당에서 구국기도회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바다를 끼고 하는 간절함이 초량교회 성도들에게 자연스럽게 배움이 되었고, 가르침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GOODTV NEWS 진은흽니다.

2020-06-23

[특별기획-한국전쟁70년] 전쟁의 아픔, 신앙으로 극복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강원도 철원은 공산 치하 박해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순교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순교 현장을 찾아가는 GOODTV 특별기획, 이번 시간엔 전쟁의 뼈아픈 역사를 순교신앙으로 극복해나가고 있는 강원도 철원의 두 교회를 취재했습니다. 천보라 기자입니다. 포성이 멎은 지 67년.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노동당사에는 아직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뼈대만 남은 건물 벽, 총알과 포탄 흔적은 치열했던 당시의 격전을 보여줍니다. 노동당사에서 600m가량 내려가면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구 철원제일교회 터를 볼 수 있습니다. 이화여대를 건축한 윌리엄 보리스가 설계한 198평의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은 국가등록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됐는데요. 이보다 더 소중한 유산은 따로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공산 치하까지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멈추지 않았던 선배들의 신앙입니다. 특히 6?25전쟁 때는 기독청년학생들을 중심으로 반공 투쟁을 활발히 펼쳤고, 김시성 장로가 공산군에 맞서 순교하기도 했습니다.  철원제일교회에서 10여 분 이동한 곳에 있는 장흥교회는 서기훈 목사의 마지막 목회집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서 목사의 신앙은 공산당을 감동시켜 많은 생명을 구해냈습니다. 하지만 서 목사는 북한군 정치보위부에 끌려갔고 한 달 뒤 순교했습니다. 당시 13살이던 이금성 장로는 어느덧 백발의 노인이 됐지만, 그때 기억만큼은 생생합니다.  (이금성 장로 / 장흥교회)  “목사님 아니면 다 죽었던 생명들인 거죠. 그래서 우리는 아직까지 서기훈 목사님과 같은 분을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어요. 그냥 다 사랑으로. 내 목숨 내놓고 내 식구들 목숨 내놓고. 누가 이웃을 위해서 그렇게 일하겠어요. 참사랑, 주민의 사랑이 참 몸에 밴 그런 목사님이다. 지금도 이야기를 하면 난 눈물이 나와요.” 장흥교회는 선배들의 신앙과 순교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서기훈 목사 순교기념비와 신한애국청년회 충혼비를 건립하고, 매년 순교자 추모 예식을 드리고 있습니다. 장흥교회는 올해로 설립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한찬희 담임목사는 한국교회가 6.25 70주년을 회복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한찬희 담임목사 / 장흥교회) “우리가 왜 서기훈 목사를 기억하냐는 거예요. 자기희생이잖아요.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신앙이 된다면 오늘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복음은 생명력 있고 역사를 일으키는 그런 힘이 될 거라고 믿어져요.” 철원제일교회 이상욱 목사도 한국교회가 전쟁의 뼈아픈 역사를 교훈 삼아서 복음 통일을 향해 하나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상욱 담임목사 / 철원제일교회) “한국전쟁 70주년을 통해서 정말 통일을 원한다는 대명제 아래 이번만큼만은 하나가 되어서 오직 복음 통일로 하나 되기를 소망하면서 한국교회가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GOODTV NEWS 천보라입니다.

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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