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국의 선교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일반적으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들어온 것을 그 시작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국가의 공식적인 허락을 받은 시기는 그보다 앞선 1884년에 고종의 윤허가 있었습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당시 선교 개척자를 기억하는 사진 전시회를 마련했습니다.
장정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1866년 프랑스 선교사 9명이 사망한 병인박해를 구실 삼아 조선을 침공한 프랑스.
같은 해 통상을 거절했음에도 서해안에 중무장한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출몰해 수로를 탐사하는 등 행패를 부리자, 평양 군민들이 격침시킨 사건으로 벌어진 조선과 미국의 전투.
해외 열강들의 간섭과 세도정치 등으로 혼란을 겪은 19세기 말 조선에서 고종은 부국강병의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1882년 고종 19년에 제물포에서 조선이 서양 국가와 맺은 최초의 수호통상조약 체결 이듬해, 조선의 개화와 독립을 위한 자원을 요청하고자 미국에 보빙사절단을 보냈습니다.
한국의 사절단과 우연히 만난 미 감리회 목사 존 가우처는 당시 일본에 있던 로버트 매클레이 선교사에게 한국선교의 가능성을 타진을 요청합니다.
복귀한 사절단은 고종에게 전기 기술과 우편 등 신문물의 중요성을 보고했고, 매클레이 선교사는 김옥균을 통해 학교와 의료시설 설립 허가를 제안했습니다.
1884년 7월 2일 고종은 고심 끝에 이를 허락합니다.
매클레이 선교사는 서울 정동 지역의 부지를 확보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미국 선교본부에 조선에 보낼 교사1명과 의사 1명을 청원했습니다.
그의 보고 덕분에 아펜젤러 목사 부부와 스크랜턴 선교사 부부가 조선에 정착하며 한반도의 근대화와 감리교의 전파가 같은 날 시작됐습니다.
[ 유은식 목사 / 제물포문화아카이브: (매클레이 선교사가) 결국은 한국선교를 열어준 장본인이 되겠죠. (그래서 조선은) 우정국이 생겨났고 또 학교와 병원 이제 설립하게 되고 전기라든가 자동차라든가 등등 여러 가지 것들이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
기독교대한감리회는 한국선교가 시작된 7월 2일을 ‘고종 황제 선교 윤허 기념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사진 전시회를 통해 당시 선교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있습니다.
조선에 선교의 불씨를 지펴준 매클레이 선교사의 순종을 본받자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 신현승 목사 / 감리회 사무국 총무 : 우리는 한국 선교 초기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여 온전한 도구로 쓰임 받은 가우처, 매클레이, 아펜젤러, 스크랜턴 모자 선교사의 신앙 정신을 계승하여 낙후 지역 선교를 위해 앞장 설 것을 결단한다. ]
감리회는 오는 8월 신학생들과 함께 가우처 목사와 매클레이 선교사의 학술세미나와 선교 여정 순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대사회적 신뢰를 잃어가는 한국교회가 초기 선교사들의 정신을 회복하자는 취집니다.
[ 태동화 총무 / 감리회 선교국 : 선교 초기에 교회가 이 민족을 계명하고 독립운동을 하고 문화 활동을 하고 했던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선교사들의 그 좋은 점을 기억해서 교회가 이 민족의 희망이 되는... ]
오직 복음전파를 위해 140년전 조선에서 황제의 허락을 받아낸 매클레이 선교사.
한 선교사의 헌신이 밀알이 되어 큰 열매를 맺은 한국교회는 새로운 부흥을 위한 길을 찾고 있습니다.
GOODTV NEWS 장정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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